부모님 죄송합니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한나라당 지지자이십니다. 뭐 우리나라 대다수의 부모님들이 그러실 테지요. 특히 아버지께서는 지난 10년간 갖은 굴욕을 겪으시며 분노를 속으로 삼켜 오셨기 때문에 노무현씨의 얼굴이나 이름조차 보기 싫어하십니다. 뭐 그건 과거 영호남 갈등 문제가 개인적으로 체화되었기 때문이고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솔직히 아버지께서는 지역갈등에 의한 피해자이시기 때문에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저라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분명 김대중씨를 필두로 하는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한 당에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일단 민주주의사회가 정착된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정책을 통한 정당지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만약 제가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면 그것은 보수노선이 좋아서이지 민주당에 대항하는 의미로서의 지지는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솔직히 지난 대선때도 그렇고 누굴 지지했는지는 절대 아무한테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만-_-

 제가 태어나던 해는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전두환씨가 머리를 빛내며 대통령을 오래오래 하고 있었고, 여기저기 학생운동이 일어났고, 그러다 보니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고, 노태우씨가 당선됐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선거는 김영삼씨가 당선되던 대선이었습니다. 처음만 해도 엄청난 인기였죠. 저희집은 김영삼씨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만 (저희 부모님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명박씨가 처음. 스스로 생각해도 대단합니다. 엄청 보수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소수자이십니다) 어린 제가 보기에도 굉장한 인기여서 책도 막 나오고 하여간 장난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민주화인사가 정권을 잡았다는 것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와서는 그밥에 그나물...

 하여간 그 뒤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선거도 늘어나고 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일단 모양새만은 그럭저럭 갖추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세대입니다. 핍박받고 독재에 신음했던 시절을 글이나 영상으로밖에 접하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성년이 되자 자연스럽게 선거권을 획득한 세대입니다. 아마 몇 년 후엔 자연스레 피선거권도 갖게 되겠지요. 우리는 노력해서 민주주의를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소중함도 잘 모릅니다. (이건 우리나라 여성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이 문제는 나중에) 물론 소중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뿐, 가슴으로 느낀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다고. 처음 선거를 한 건 2006년 지자체 선거였습니다. 당시는 만 스무 살이 되어야 선거가 가능했기 때문에 탄핵문제가 일어났던 17대 총선은 그냥 구경만 하며 보냈고 2006년에야 선거권을 얻어 투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이 2007년 대선. 그리고 요번 총선입니다. 솔직히 그동안은 정치에 대해 무관심했었고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 시장이 되든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선거기간 이것저것 보며 어이없던 일도 있었고 결과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그랬습니다. 친박연대에 박근혜씨가 없는건 붕어빵에 붕어가 안 들어간 것과 같은 이치일까요. 전통적으로 민주당쪽 지지였던 우리 동네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대체 무슨 일일까요.

 어쨌든 이번에는 많이 생각해서 투표했습니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제 소중한 한 표는 사표가 되었습니다. 통일을 구호로 삼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통일에 대해 쥐뿔도 관심이 없는 20대 젊은이인 저는 진보신당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만, 의석을 하나도 차지하지 못했군요. 그동안 민주노동당과 한국총학생연합의 행태에 대해서는 굉장한 반감과 불신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번에 진보신당이 분리되어 나오면서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속이 쓰립니다. 대학생이라면 민노당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꽤나 노력하는 모양인데, 전 민노당은 한나라당보다 더 싫어합니다. 교조주의가 싫더라구요. 작년에 교문 앞에서 유세할때 있었던 해프닝 건도 좀 그랬고... 진보신당의 경우 소수자의 권익이나 우리나라의 소외받고 있는 계층에 더 힘을 쏟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주류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사회의 비주류였음을 깨닫게 될 때 뭔가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나 봅니다. 

 내가 지지하지 않아도 한나라당은 이길 거라고 생각했고, 결국 그들은 이겼습니다. 내가 힘을 보태야 새로운 진보가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고, 그랬지만 진보신당은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께 더 이상 죄송하다는 말은 안 해도 되겠죠. 저는 집안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한나라당 지지자인 척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꼭 진보신당이 아니더라도, 여성과 어린이와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을 위한다는 표어를 걸고 있는 정당을 지지할 겁니다. 그게 한나라당이 된다면 그들을 지지하겠지만,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by 아스 | 2008/04/11 10:46 | rouge foret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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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8/04/11 11:21
진보신당에 표를 주진 않았지만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표어' 만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가도 유심히 보시기를. (진보신당이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Commented by 아스 at 2008/04/11 19:00
rumic71님 덧글 감사합니다 ^^

네, 표어나 주장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하겠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일단 그들이 목소리를 냈다는 데에 공감했기 때문에 지지를 보냈고 앞으로 행동으로 옮겨줄 거라는 기대를 걸어 봅니다. 설령 그들 역시 정치꾼이고 아무런 행동이 없다 하더라도 그 표어 밑에 모인 사람들이 행동에 나설 수 있겠죠. 저도 지금까지는 별 생각없이 살았지만 이제는 한사람의 성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사회의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Commented by 리엘 at 2008/04/11 19:01
부모님께 죄송할거 없어 너는 네가 찍고 싶은 정당 찍으면 되는거지 뭘'~'
사표가 되더라도 일단 네가 찍고 싶은 사람/정당 찍는게 후회는 안하겠지.

그나저나 네 사진 너무 하얗...=ㅅ=ㅋ
Commented by 아스 at 2008/04/11 19:04
오 실시간 댓글을 달아보겠어>3</

사실은 우리 구에서 한나라당 이겨서 맛난거 얻어먹었거든(.....) 좀 죄송한듯 ㄲㄲㄲ 근데 막상 사표 되니까 좀 실망했어 ㅠㅠㅠㅠㅠㅠㅠㅠ

얼굴은 하얀데...눈가는 시커멓고 저사진 아주 맘에들어-ㅂ-b
Commented by 리엘 at 2008/04/11 19:32
우리 아빠는 포도주 한잔하시면서 개표방송 보시는데 육두문자가 난무하시더군=ㅅ=;;
이쉐키 저쉐키 해가면서...=ㅅ=;;
맛난 것도 안사주신 울아부지는..ㅠㅠ
Commented by 아스 at 2008/04/11 22:36
ㅋㅋㅋ 우리집은 오나전 세상에 이런일이 보는 분위기였는데;;; 민주당 될줄알았거든-ㅂ- 민주당 후보가 2선인가 3선 지역구 국회의원인데 동네사람이라고 해서 계속 해먹고 있어서 이번에도 당연히 되겠지 했는데 의외로 끝까지 대접전;; 내가 보고있을때는 30몇표차이로 한나라당쪽이 이기고있었는데-ㅁ-ㅁ-ㅁ-ㅁ-

근데 사실 이명박 대통령됐을때보다는 그냥그랬어.

우리집은 지난 5년간 뉴스를 보지 않았다..... 나는 괴로웠어! 언론을 공부하는 학생이 뉴스를 못보니까 이거원 미치고 환장할지경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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